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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생기는 법, 그리고 예방하는 법

오늘알게됨 2021. 12. 15. 07:30

자존심.


나는 맞춤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때때로 틀리긴 하지만 그래도 노력한다. 그런데 만약, 유재석의 sns(없지만 가정한다면)에 가서 그가 쓴 내용중에 틀린 맞춤법을 알려주었다고 가정해보자. 유추해보건데 그의 성격에 나를 비난하지도 않을것이고, 맞춤법이야 틀린것을 고치면 되는것이니 별 문제는 없을것이다. 그리고 그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틀린 맞춤법을 수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생긴다. 아마 나는 그에게 좋은 이미지는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실수를 공개적으로 지적했기 때문일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의 적을 만드는것은 매우 간단하다. 그의 잘못을 대놓고 지적하면된다. 그의 틀린 행동, 틀린 맞춤법, 틀린 생각을 말이다. 그렇게 한다면 확실한 나의 적이 생길것이다. 그의 실수, 잘못을 제대로 고쳐주기위해 지적한건데 왜 적이 되느냐는 질문이 있을수도 있겠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면 좋을것같다. 위인정도의 성품과 지식을 지니지 않고서야 낯선 누군가가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기를 요청한다면 아마 기분좋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것이다. 심지어 본인이 잘못했는데도 말이다!

앞서 쓴 글들중에 타인을 비난하지말라. 설득하는것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라는 글을 써왔다. 물론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고나서 깨달은 것들이지만, 오늘 알게된 내용들은 나의 모습을 돌이켜 봤을때 특히 반성할 부분이 많았다. 나는 내가 책을 내 주위사람들보다는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공부했던것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내 주위의 친구, 가족의 잘못,부족함(내 생각에 부족하다고 생각했던)들을 조금은 강하게 이야기해왔었다. 그렇다. 전적으로 내가 틀렸고 그들을 바꿀수도 없었다.

조금더 날것으로 말하면 나는 적을 만들어왔던 것이다. 그들의 잘못을 설령 눈치 챘더라도, 그들을 가르치려는 말투, 행동을 해서는 그들을 변화시킬수 없다는걸 마음속 깊이 새겼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순간 그들의 생각은 오히려 그들 자신을 방어하고, 나의 주장을(객관적으로 옳더라도) 반박할 이유를 찾고, 반대할 것이다. 오늘 읽은 부분중에는 한 변호사에 대한 예시가 있었다. 법원에서 변호를 하던 변호사에게 판사가 물었다.

판사: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이미 지나지 않았나요?
변호사는 답했다.
변호사: 판사님 해당 관련법에 대한 공소시효는 없습니다 판사님.
판사는 대답이 없었다.

변호사는 그때까지 정의는 자신의 편이라고, 법은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그 생각이 틀렸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법률에 대해 더 잘알았던 변호사에게 정의로운 결과가 나왔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에겐 한명의 적이 생겼다. 공개석상에서 판사의 법에 대한 무지함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나는) 현명해 질 필요는 있지만, 그것을 남에게 알릴 필요도, 판단하고 가르칠 필요는 없다. 그것을 깨달았다. 위의 예시처럼 내가 판사였더라도 불쾌했을 상황이고, 아무리 변호사의 말이 맞는 말이었더라도 (물론 법에 근거하여 판결했겠지만) 결코 그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았을것이다. 나에게 배울생각 없는 이들에게 가르치려하지말자. 내가 정말 가르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사람이 깨닫지 못하게 가르쳐야 할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배움일것이다.

원치않는데 가르치는것은 적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그사람이 깨닫지 못하게 가르치는것은 적을 만드느것을 예방하는것을 넘어, 진정한 도움을 주는 일일것이다. 앞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지말자. 나 자신이 현명해지는것에 집중하자. 그리고 그것을 굳이 남에게 알리지말자. 그리고 항상 나 자신의 생각이 틀릴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두고 상대방의 의견,잘못에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자. 난 언제나 옳지 않다. 언제나 틀릴 수 있는 존재이다. 항상 그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매일 반성하자. 그렇게 성장하자.